중입자 치료가 가능한 암종이 기존 전립선암에서 췌장암, 간암, 폐암으로 확대됐다.
국내 처음으로 중입자 치료기를 설치한 연세암병원은 5월 회전형 중입자 치료기 가동을 시작했다. 회전형 치료기는 치료기 안에 환자가 누우면 기기가 360도 회전하면서 에너지빔이 암세포를 타격하는 치료기다. 한 곳에서만 에너지 빔이 나오는 고정형 치료기와는 다르다. 회전형 치료기는 정상 장기를 보호하면서도 암세포 조사 정확도를 최대화해 췌장·폐암·간암 등 악성암의 치료가 가능하게 됐다.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 금웅섭 센터장(방사선종양학과 교수)은 "중입자 치료의 1차 대상은 수술이 어려운 환자"라며 "그래서 수술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 췌장암, 폐암, 간암 등에 도전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입자 치료는 탄소원자를 가속해 만든 에너지빔을 환자 몸속 암세포에 정밀하게 조사해 사멸하는 원리다.
이를 위해 싱크로트론이라는 원자 가속기가 탄소원자를 1초당 지구 5바퀴를 도는 빠르기(빛의 속도의 70%)로 속력을 더해 치료기로 전달한다. 이렇게 무겁고 빠른 탄소원자가 체내에 조사되더라도 부작용 걱정은 덜 수 있다. 초당 10억 개의 탄소원자가 정상 조직은 지나치고 3D 엑스레이로 설정한 좌표에 따라 정확하게 암세포에서만 터져 에너지를 발산하고 나서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상 조직은 보호하되 암세포 사멸력은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장기 안에만 암이 있을 경우 중입자 치료 적용중입자 치료가 가능한 조건은 첫째, 암이 췌장·간·폐 등 장기 안에만 있어야 한다. 중입자가 특정 타깃 부위에 에너지빔을 쏘기 때문에 암이 여기저기 전이됐다면 이득이 없다. 둘째, 수술이 어려운 경우다. 금웅섭 센터장은 "수술이 가능하면 암 절제를 통해 확실한 치료를 할 수 있는 수술을 먼저 권유한다"고 했다.
췌장의 경우 5년 생존율이 15.9%에 불과한 악성암이다. 췌장은 주변에 큰 혈관이 지나고 있는데, 혈관에 암이 인접한 경우는 혈관 손상 위험 때문에 수술을 못 할 수 있다.

금 센터장은 "암세포가 혈관 주변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경우 수술로 암을 다 떼기 어려운데, 중입자는 혈관이 아닌 조직에만 에너지빔이 조사되므로 이런 경우 중입자 치료를 시도해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췌장암이 인접 장기인 위나 십이지장에 붙어있으면 중입자 치료가 어려울 수 있다. 위, 십이지장에도 영향을 줘 출혈이나 궤양이 발생할 수 있다.
일본 방사선의학 종합연구소(QST) 보고에 따르면, 병기가 진행돼 수술이 불가한 췌장암 환자의 경우 항암제와 중입자 치료를 병행했을 때, 2년 국소제어율이 80%까지 향상됐다. 국소제어율은 치료 받은 부위에서 암이 재발하지 않는 확률로 특정 부위(국소)를 타깃하는 중입자 치료의 성적을 알 수 있는 주요 지표다.

간암 상태 따라 중입자 치료 가능 여부 달라져
간암도 간에만 암이 있어야 중입자 적용이 가능하다. 간암은 수술 외에 색전술, 고주파열치료술 등을 적용해왔는데, 여기에 더해 중입자 치료를 해볼 수 있게 됐다. 금웅섭 센터장은 "어떤 한 치료가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고, 여러 치료법을 해볼 수 있는 환자들도 많다"며 "간암 의료진이 간암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해 중입자 치료 적합성 여부를 일차적으로 판단하고 방사선종양학과에 협진을 의뢰한다"고 했다.

연세암병원 간암센터 김미나 교수(소화기내과)는 "간암은 간경변증 등 만성 간질환을 동반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적절한 간암 치료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간암 병기, 간 기능, 간암 치료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군마대학병원에서 치료한 간암 환자의 2년 국소제어율은 92.3%에 달했다. QST의 임상연구에서는 5년 국소제어율 81%를 기록했다. 특히 종양의 크기가 4cm 이상으로 큰 경우에도 2년 국소제어율이 86.7%였고, 2년 생존율은 68.3%로 높았다.
폐암의 경우도 역시 전이 없는 환자에게 적용한다. 폐가 딱딱해지는 간질성 폐질환을 동반하면 수술이 어려운데, 이 때 중입자 치료를 시행하면 낮아진 폐 기능과 상관없이 폐를 최대한 보호하면서 국소제어율은 높일 수 있다. 간질성 폐질환이 있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가 중입자 치료를 받았을 때 생존율에서 차이가 없었다는 군마대학병원의 연구가 있다.

중입자 새로운 암종 확대 위한 연구세브란스는 2005년 로봇 수술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해 기존 전립선암에서 대장암·두경부암·갑상선암 등으로 치료 암종을 확대해 갔다. 중입자 치료기 역시 국내 처음으로 도입, 전립선암 외에 두경부암, 직장암, 골육종암 등 앞으로 적응증 확대가 이뤄질 예정이다. 금웅섭 센터장은 "아직 회전형 치료기 1대가 가동이 안되고 있지만 풀가동이 되는 상황이 되면 새로운 치료 프로토콜을 만들 여유가 생긴다"며 "당장은 중입자 치료를 꼭 해야할 환자를 위주로 하고 있는데, 가동률이 올라가면 새로운 치료 방법을 적용하는 임상 연구를 같이 해볼 예정"이라고 했다.

금웅섭 센터장은 "중입자 치료는 암 완치를 위한 하나의 치료 도구"라며 "중입자 치료에 최대로 효과를 볼만한 환자를 잘 선별하는 것이 의료진의 역할"이라고 했다. 연세암병원은 매주 온라인 컨퍼런스를 통해 외과, 종양내과, 소화기내과,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의료진이 모여 환자 케이스를 보고 중입자 치료 가능 여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